[손병주 교수님 경향신문 칼럼] 날씨가 수상하다
우리학부 손병주 교수님의 경향신문 칼럼입니다.
<원문 기사>
[기고]날씨가 수상하다
손병주 ㅣ 서울대 지구환경학부 교수·한국기상학회장
한낮 기온이 20도대 후반으로 치닫고 있어 벌써 성하(盛夏)의 문턱인 듯싶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의 어린이날 노래 가사에 나오는 5월의 푸름은 정녕 우리가 오늘날 보는 5월의 초록이 아닌 듯싶다. 1937년 발표한 ‘신록예찬’에서 이양하 선생은 5월에 갓 나온 각양각색의 신록을 젊음에 비유하며 아름답지만 기간이 짧음을 애석해했다. 녹음이 짙어가는 5월이다. 한 달 전인 4월 초에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이 한꺼번에 앞다투어 피어서 화려한 모습에 눈이 즐거웠다. 하지만 봄이 짧아 아쉬웠다.
예전엔 늦게 피던 라일락도 함께 피어나 향기도 없이 일찍 지는 일이 해마다 되풀이되니 기후가 예전과 무척이나 다름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온난화된 아열대기후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말라리아나 지카 바이러스 전염이 낯설지 않은 기후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남극대륙이 녹아내리고 북극 해빙(海氷)이 감소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북극곰이 살 곳을 잃어가는 지구온난화의 소식을 그저 외신으로 받아들일 일만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주 초, 소형 태풍에 맞먹는 저기압이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태풍급의 바람이 몰아쳐 이틀 동안 항공기 수백편이 결항하고 각종 바람 피해가 전국에서 속출했다. 기상 전문가들은 극지역의 온난화와 일본에 오래 머물렀던 고기압이 저기압 발달을 유도했으며 그 결과 폭탄저기압으로까지 진화했다고 이야기한다. 이로 인해 주말에는 황사주의보가 발령되는 상황에까지 가게 되었다.
폭탄저기압이라는 말이 우리 주변에서 생소한 것은 아니다. 초겨울이나 초봄에 한랭한 공기가 남하할 때 나타나 급격히 발달하는 저기압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보고된 바가 있다. 특히 대륙에 기원을 둔 차가운 공기가 동해에서 온수를 만나 해수면으로부터 열과 수증기를 얻어 폭탄저기압 급에 이르는 현상을 국내 학자들은 동해선풍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바람이 특히 강해서 붙인 이름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문제는 폭탄저기압이 북쪽의 한랭한 공기와 남쪽 공기의 충돌이 빈번한 초겨울이나 초봄이 아니라 마치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대기는 상대적으로 많은 수증기를 함유하게 되는데, 그 양은 온도 증가에 비례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이미 아열대화한 한반도 지역 대기가 과거보다 훨씬 많은 수증기를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수증기는 자동차의 연료로 사용되는 휘발유와 같이 저기압이라는 기계를 움직이는 연료 구실을 한다. 더 많은 수증기는 더 강한 저기압을 만들 수 있는 연료를 공급하게 되는 것이니 기존과는 다른 태풍 규모의 폭탄저기압이 생길 가능성이 훨씬 커지게 된 것이다. 슈퍼태풍의 출현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이번 폭탄저기압의 경우, 관측된 강수량도 가히 태풍급이다. 제주도는 물폭탄을 맞았다. 이번에 발생한 폭탄저기압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존에 경험해 보지 못한 여러 기상현상이 나타나는 증후일 것이며, 더 큰 재앙을 부르는 이상기상 현상의 전조일지 모른다.
정부 당국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이러한 이상기상에 대비해 국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온난화 속에서 점차 강도가 증가하는 이상기상에 대비하기 위해 인프라의 재구축 등 정책의 급속한 전환이 필요하다. 더불어 기후변화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인지하고 엘니뇨, 북극진동, 극지 해빙 감소 등 한반도 일기예측에 필요한 온난화의 영향 파악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기사 링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132104005&code=99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