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년간 미국에서 겪은 경험들

2024-03-28l 조회수 35


『지난 6년간 미국에서 겪은 경험들』

조두성 교수 |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안녕하세요! 저는 지구환경과학부에서 학부와 대학원 시절을 보내고 미국 콜로라도 볼더에서 postdoc 및 project scientist로 근무하다가, 얼마 전 급하게 한국에 돌아와 미국 생활의 마무리와 동시에 한국에서의 새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조두성입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조교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이렇게 지금 동문 칼럼을 쓰고 있네요. 이 글을 보게 될 후배분들께 어떠한 이야기를 전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연구나 학문에 대한 조언들은 이미 다른 분들이 많이 해주셨기도 하고 앞으로도 훌륭한 글들이 많을 것이라 믿고 있기에, 제 미국에서의 경험들을 약간은 다른 각도에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주된 내용은 제가 미국 가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막상 가고 나니 달랐던 점들인데요. 미국도 주마다 도시마다 사람들이 많이 다르고 하니, 제가 근무했던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면 너무 100% 믿지는 말아주시고, 이런 케이스도 있구나라고 생각해 주세요!

저는 본디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영어 울렁증도 상당히 심했었고요. 그래서 원래는 한국에 남으려고 했었습니다. 근데 사람 인생이란 것이 어쩌다 보니 여러가지의 상황들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박사 졸업식 바로 다음날에 미국에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제 박사 지도교수님이신 박록진 교수님의 조언도 크게 영향을 미쳤었고요. 지금 와서 지난 몇 년간을 돌아보면, 이 결정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타국에서 힘들었던 시기는 매우 많았지만요. 캐리어 2개에 인생을 싣고 덴버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 셔틀을 기다리던 때가 아직도 생각이 나네요. 처음 도착해서 밖에 다니면 영어를 해야 되니 그게 무서워서, 기숙사 입주 전 에어비엔비에 살던 2주간 우유와 시리얼만 마트서 사 와서 먹었던 기억도 나고요. 처음 기숙사 입주했을 때, 창문에 쇠창살이 없어서 안심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창문에 쇠창살이 있으면 그 동네가 치안이 안 좋다는 글을 봤었거든요. 위의 예들에서 느끼실 수 있겠지만 온갖 두려움을 가지고 처음에 미국에 왔는데, 막상 살다 보니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어찌 보면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들은 아무래도 조심할 것들을 위주로 알려주다 보니 저도 그런 쪽으로만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제가 살던 도시인 콜로라도 볼더가 워낙 살기 좋은 도시였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네요. Social Security Office나 DMV 같은 곳들도 글로만 접했을 때는 대기 시간도 길고 불친절하기로 악명이 높았었는데, 제가 간 곳들은 대기 시간도 20분 이내였고 사람들도 다 친절했었어요.

초반에는 박사 졸업 후 바로 출국을 해서 이역만리 타국에 있다 보니 더 이상 뒤로 숨거나 비빌 언덕이 없다는 생각에 힘들기도 했었습니다. 현재 박사 과정 중인 후배분들이 나중에 포닥을 나가서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특히 처음 6개월간은 어디 다른 나라에서 혼자 뚝 나타난 사람으로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압박감이 심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얘기하고 싶은 건, 여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다 보면 그 사람들도 나를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이에요. 미국에서 일하는 동안에 미국에 대한 여러 가지 편견들도 많이 깨지게 되었는데요, 미국에서는 적극적으로 계속 막 얘기를 해야지 가만있으면 안 된다는 것도 제 직장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고, 오히려 여기도 잘난체하는 사람보다 겸손한 사람을 더 좋아하는 구나 하고 느낀 적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 직장 동료들한테 이것저것 하소연한 순간들이 매우 많이 있었는데, “나 왜 이리 저것에 대해서 모르겠지”, “저거 왜 이리 못 알아듣고 이해가 안되지” 이런 류의 얘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그 친구들도 덩달아 나도 모르겠다고 말한다던지, 자신들의 경험담들을 얘기해주곤 했습니다. 심지어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나 이거 처음 말한다고 하시면서 과거 자신의 80년대, 90년대 경험담을 공유해 주시기도 하셨었고요. 코로나 기간에는 일이 잘 안되어서 여러가지 돌파구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었는데, 그 때에도 제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극복 가능한지 같이 서로 얘기하고 몇가지 방법을 저에게 추천해주기도 했었습니다. 나중에 미국에 나가게 될 후배분들 중에서 미국에서는 적극적으로 계속 얘기하고 잘 아는 척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들이 있으면, 그런 압박감은 좀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다만 저는 이 바람에 영어를 배우기를 게을리해서.. 결국 한국에 돌아오는 이 시점까지도 영어를 제대로 못 배우고 돌아와 버렸네요!


과거 동문 칼럼들을 보면 항상 사진들이 두어개씩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역시 또 제 편견이 깨졌던 것들로, 미국 사람들은 정이 없고 개인주의적이라는 편견이 깨진 순간들도 많이 있었는데, 그와 관련된 사진들로 마무리하
도록 할게요. 첫 번째 사진은 Intercambio라는 봉사 단체를 통해 한 학기에 25달러 내고 영어 배우러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선생님이 종강 이후에도 크리스마스 같은 때마다 저를 집에 초대해 주셨어요. 그중 한 해의 크리스마스 때 찍었던 사진입니다. 정작 선생님은 사진 찍으시느라 사진에서는 빠지셨네요.  번째 사진은 제가 다니던 연구소에 매주 목요일마다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들 모이는 시간이 있는데, 제가 1월 말 한국 귀국이 정해지고 나서 커피 시간에 내려가니 갑자기 사진 속 케이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마지막 사진은 귀국 전에 점심, 저녁, 카페 등등 송별회들을 많이 했었는데, 그중 하루 찍었던 사진입니다. 서로 돈 내려는 실랑이를 한국에서나 하는 건줄 알았는데, 송별회 때마다 여러 번 실랑이를 했었습니다. 그중에 이때의 실랑이가 제일 기억이 납니다. 결국에는 한 분이 “네가 한턱내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가 널 보내주는 자리야”라고 말해서 돈 내길 포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외에도 카드나 쪽지 같은 것들도 따로 받기도 하고, 집에 초대한다든지, 미국 사람들도 끈끈한 정이 있구나라고 많이 느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간의 일들을 글로 나열하자니 글이 너무 길어지는 느낌이라 여기서 줄이겠고요, 못다한 말들은 나중에 따로 찾아오시면 더 공유하도록 할게요. 경찰차 추월 사건이라든지, 입국 심사 에피소드들 등 글로 남기기에는 좀 부끄러운 다양한 추가 사례들이 있네요. 특히 나중에 미국에 처음 가시는 분들이 생활/정서적 측면에서 도움을 얻고자 하면 언제든지 제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겠으니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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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이학사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이학박사
Postdoctoral Researcher, Dept. of Chemistry, Univ. of Colorado Boulder
Postdoctoral Fellow, Advanced Study Program, NCAR
Project Scientist Ⅰ, Atmospheric Chemistry Observations & Modeling, NCAR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