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지질학도, 적성을 찾다.

2022-04-04l 조회수 633

중년의 지질학도, 적성을 찾다.

 

이승배 책임연구원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배운 사람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많은 일들 중에, 배운 것을 일반인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파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일, 즉 지구과학의 대중화는 우리의 학문 분야와 결국 그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높이는 보람찬 일 중 하나입니다.

 

저는 학부 야외 수업 중에 직접 발견한 화석에 매료되어 지구시스템과학(지질학)을 선택했습니다. 좀 더 인기 있는, 소위 밥벌이가 잘 될 만한 공부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주변의 걱정도 있었지만, 저의 고민은 ‘대학원에서 암석을 연구할 것인가 화석을 연구할 것인가’였습니다. 결국 대학원에서는 고생대 전기의 극피동물과 삼엽충을 소재로 고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수 억 년 전 생물의 흔적은 신기하기만 했고, 화석과 암석을 통해 당시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신종 화석을 발견했을 때는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고, 저의 연구를 해외 학자들과 교류하는 것은 뿌듯했습니다.


그림1. 박사과정 중 중국 산동에서 캄브리아기 삼엽충을 탐사하던 모습

사회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첫 직업은 국립과학관에서 자연사 관련 전시나 교육 콘텐츠를 생산하고 운영하는 일이었습니다. 전공과 관심사를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어서 운이 매우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공무원의 질서나 전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수많은 과정들은 제게 너무 버거웠습니다. 직업과 직장의 괴리를 실감한 것이죠. 화석을 찾고 연구하던 시절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또 한 번 운 좋게도 전공 관련 연구소로 이직했습니다. 제가 지원했던 부서는 우리나라 공식 지질도를 만드는 연구센터였고, 돌과 화석,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제게 딱 알맞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 조사 지역에는 화석이 없었습니다.

 

또 한 번의 방황 속에서 저는 또 화석을 선택했습니다. 화석이 많고, 화석을 연구할 수 있는 곳, 지질박물관으로 부서를 옮겼습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전시품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무로 되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직업과 직장을 바꿔오는 동안 바뀌지 않은 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스스로가 암석과 화석 보기를 즐거워하며, 제가 공부한 화석이나 암석, 그리고 그들이 품고 있는 지구의 이야기들을 일반인들에게 전하는 활동들에서 보람과 에너지를 느껴왔다는 것입니다.

 

대학원 시절에는 어린이 신문에 화석 이야기를 연재하거나 박물관에서 어린이들에게 강의도 하고, 지자체에서 주최한 화석축제에서 시민들에게 고생대 지층과 화석에 대해 설명했었습니다. 과학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는 화석과 지구의 역사에 대한 안내나 강의를 많이 했고요. 지질조사 업무 중에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암석과 화석의 다양성, 지질도, 한반도의 지질 역사에 대해 전파했습니다. 지질박물관에서는 삼엽충을 포함한 무척추동물 화석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전시하고, 철광석을 직접 깎아 악기를 만들어 누구나 두드려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주변의 암석에 호기심을 갖게 하려는 책도 한 편 썼고요. 이제 저에게는 목표가 뚜렷해 졌습니다. 직장과 직업이 또 바뀌더라도 사람들이 화석이나 돌과 친숙해지도록 하는 일을 꾸준히 하기로요.


그림2. 웹툰 스타일의 캄브리아기 바다 복원도와 어우러지게 전시한 무척추동물 화석들(좌), 직접 설계하고 암석을 가공하여 제작한 철광석 글로켄슈필(우)

갈수록 화산, 지진, 싱크홀, 쓰나미,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기후변화, 에너지 등의 지구과학과 관련된 사회 이슈가 빈발하고 있죠. 지구과학의 학문적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기에 관련 전공자로서 자부심은 커집니다. 그러나 학문이 발전하는 데 비해 일반인은 물론 언론기자들마저도 지구과학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쉽게 느끼게 됩니다. 그럴 만하지요. 학문은 점점 세분화되어 가고, 지구과학 교과목은 기피 대상이고, 화석과 돌멩이를 좋아하던 어린이들은 학업에 치여 관심을 이어가지 못하니까요.

 

인터넷에 수많은 데이터와 정보가 떠도는 세상에서는 관심과 흥미만 있다면 누구나 아마추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친해지면 재밌고, 재밌으면 알고 싶어지죠. 지구과학에 아마추어가 많아지면 우리 학문의 저변도 넓어지고, 우리가 배우고 연구하는 것들의 가치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아마추어가 되는 첫 단추를 끼워 주는 것, 사람들이 다시 하늘, 땅, 바다와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도 순수한 연구 못지않게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지구과학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든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가능성도 큽니다. 반짝이는 돌은 널려있고, 예쁘고 신기한 구름은 고개만 들면 볼 수 있으며, 바다낚시에는 조석과 해류의 원리가 있으니까요. 여러분이 지구과학을 선택한 이유나 연구하는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배웠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강점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 친구에게 내가 배운 것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 보면 어떨까요? 저처럼 언젠가 지구과학 대중화에서 적성을 찾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 Profile *****

1996.03.-2000.02.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부 지구시스템전공 (이학사)
2000.03.-2003.02.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이학석사/고생물학)
2003.03.-2008.08.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이학박사/고생물학)
2008.09.-2009.08.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BK21 박사후연구원)
2009.10.-2010.08. School of Environmental and Rural Science, University of New England, Australia (박사후연구원)
2010.09.-2014.09. 국립과천과학관 자연사분야 담당(일반계약직/환경연구사)
2014.10.-2017.12.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조사연구실 선임연구원
2018.01.-2018.09.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선임연구원
2018.10.-2022.01.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장(2020.07.~ 책임연구원)
2022.02.-현재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박물관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