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잔소리

2021-03-31l 조회수 1591
저는 1990년대의 마지막 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1학년 때는 화염병이 날아다니는 교문을 지나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정한 것은 언제인가 가끔 되짚어 봅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바다의 미생물에서 유용한 물질을 분리하고 분석하는 일이 재미있지만, 이 일을 업으로 해서 살아가야겠다는 결정을 어느 시점에 정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학은 성적 맞춰, 석사는 군대 가기 싫어, 박사는 취직이 두려워 진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기 반성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학위 과정을, 박사후 과정을 밟아가면서도 불확실한 미래에, 생활인의 현실에 불안한 마음을 가진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아마, 후배님들이 가장 궁금한 건 학위 다음의 과정일 것입니다. 저는 학위를 마무리하고 취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학위 과정 중에 가족을 꾸리게 되었고, 꽤 큰 회사에 갈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방문하였던 미국의 대학에 갑자기 박사후 과정 자리가 생겼고, 지도교수님의 추천서와 함께 두 달만에 (정확하게는 7주만에!) 샌디에고에 날아갔습니다. 박사후 과정은 학위 과정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학위과정에서 기본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지시가 주어지기보다는 목표가 정해지고 과정을 주도적으로 메꾸어 나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무엇보다 다양한 방향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연간 계약을 기반으로 2년 반을 생활하다 지금은 부산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샌디에고에서도 현지에서 취직을 할지, 다른 곳으로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찾아볼 것인지에 대하여 끊임 없이 고민하였습니다. 지금은 신임 교원으로 제한된 자원과 부족한 연구환경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후배님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먼저 고민하는 사람으로 공감 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보려 합니다. 어떤 전공을 할 것인지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학위 과정에서 수업으로, 학교의 구조에 의해 정해진 전공 분야는 나중에 본인이 하고 싶은 공부를 진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입니다. 지금 특정 전공 과목 수업을 듣거나 못 듣는다고 해서 나중에 나의 공부가 크게 더 쉬워지거나 길이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준비할 수 있는 다양한 수업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폭넓은 전공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우리 학교가 가진 큰 장점입니다. 오히려 각 전공을 뛰어 넘는 융합과 다학제적 접근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시기입니다. 저는 학부에서 해양학을, 학위과정에서는 천연물화학을 공부하였고, 지금은 유용 해양 미생물 분리 동정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합니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은 성인입니다.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많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고 갚아갈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 학교는 사회로부터 상대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고 있으니, 조금은 고민을 덜 수 있어 다행입니다. 단순히 학자금 대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나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고 언젠가 갚아야할 빚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학교에 있는 상황에서 실감이 나지 않더라도, 공부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고, 정답은 없습니다. 공부를 계속해서 학위를 받는 것이 인생의 승리자는 아닙니다. 학위 과정에서도 자신의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바꾸어도 늦지 않습니다. 오히려 학교 밖에서 사회에 더 큰 공헌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조금 늦은 것 같아도 대부분의 여러분은 충분히 젊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생활하는 중에도 폭 넓은 사회적 교류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주어진 지금의 현실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은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위 이야기들은 제가 잘하지 못해 아쉬웠던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주변에 도움을 위한 손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좁게는 지금 학교에서 같이 생활하는 동료와 지도교수님, 넓게는 이미 학교를 떠난 선배와 동문들도 먼저 연락한 후배에게 호의를 가지고 도움을 아끼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 Profile *****
양인호 교수 |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과학기술전문대학원
1999.03.~2003.02.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해양학전공 (이학사)
2005.03.~2007.02.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이학석사)
2010.09.~2015.02.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이학박사)
2018.04.~현재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과학기술전문대학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