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동 4층 휴게실을 떠올리며

2026-03-30l 조회수 32

『25-1동 4층 휴게실을 떠올리며』

 

                
 김지혁 | 부산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조교수

 

안녕하십니까? 저는 2025년 봄학기부터 부산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인 김지혁입니다. 4층 휴게 공간에서 SEES 레터를 훑어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동문칼럼에 글을 쓸 기회를 얻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학부부터 석·박사 과정까지 보낸 시절과 공간을 되돌아보니 새삼 모교가 그립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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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멜버른 화산 정상에서 암석 시료를 기재하는 중 – 2016년 남극의 여름, 대학원 시절>

 

저의 학위 시절 대부분은 25-1동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주로 지질학을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구 분야로서는 지구화학적 분석을 활용한 화성암석학을 전문으로 하였고, 지금도 그 분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역동적이고 화려한 화산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화산 활동과 그 동력원인 마그마에 궁금한 것이 많았거든요. 화성암석학은 마그마가 만들어지고, 진화하고, 화산 분출을 일으키고, 또한 그 과정에서 지구의 다채로운 원소가 분배되고 순환하는 모습을 포착하고자 하는 학문입니다. 특히 저는 학위 주제로 남극 지역을 다루게 되면서 장보고 기지가 위치한 북빅토리아랜드 일대의 널따란 신생대 화산지대의 형성사에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수천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수십 개의 화산들이 만들어져 있고, 오늘날 증기를 내뱉는 활화산도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져 아직도 정찰 연구가 필요한 지역입니다. 정밀한 연대 측정과 다양한 화학 분석을 종합하면 이 화산지대의 변천사와 특성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하는 연구 분야 이야기를 하니 말이 길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이 분야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저는 학위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2013년에 시작하여 2022년 2월까지 9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고마운 분들의 인내와 배려를 발판 삼아 졸업할 수 있었지요. 분명히 저 스스로의 인내 또한 많이 필요했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공부 환경은 퍽 좋았기 때문에, 그 인내는 대부분 스스로와의 싸움에 기인한 것이었으니까요. 대개는 막연히 더 나은 자신의 모습을 상정하여 그에 도달하려 했던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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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박사학위 연구실 선후배들과 함께 – 2025년 가을>

 

결국 박사가 된 지금의 저 자신이 필시 더 나은 모습인가 하면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식이든 변하긴 했습니다. 대학원 시절에 보았던 뮤지컬 ‘위키드’에는 이런 내용의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더 나은 이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영영 바뀌었어.” 생각해 보면 그런 변화를 추적하는 것이 지질학자들이 곧잘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역사 언어학이나 고고학처럼 통시적인(diachronic) 시선을 좇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무쌍한 대상 자체가 하나의 연속적인 무엇이고, 고유하고 비가역적인 과정을 밟아 유일무이한 무언가 빚어졌다고 논문을 씁니다. 그 과정에 좋고 나쁨은 없지요.

 

되돌아보면 그 무던히도 애쓰던 시간 속에 너무나 재미있고 보람찼던, 그리고 감사했던 순간이 많았습니다. 저를 가르쳐 주셨던 은사님들의 덕분으로 남극의 경이로운 풍광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경험도 그러했고, 영민하고 밝은 동료들과 의견과 담소를 나누던 매 순간도 그러했습니다. 여러 수업 기자재를 마음껏 만지며 조교 수업을 준비해 보던 경험도 뜻깊었지요. 박사과정 말미에 지쳤을 때 다그치는 대신 인내심을 가지고 저를 기다려 주셨던 지도교수님의 지혜에서도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힘들었던 순간도 결국 저를 빚어내는 한 과정에 불과했고요. 그렇게 소중한 과정으로 빚어진 지금의 모습이 대학원을 시작할 때 막연히 상상했던 제 모습과는 조금 다릅니다만, 그 차이에 대한 감각은 아쉬움보다는 만족과 기대에 가깝습니다.

 

지금의 저는 새로운 환경, 그러니까 부산대학교 조교수로서의 일에 매진하느라 또 다른 식으로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모든 게 생소해서 적응 중입니다. 쉽지만은 않은데, 글쎄요. 대학원을 통해 배운 대로 매 순간의 일에 매진하다 보면 또 다른 저를 뿌듯하게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칼럼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 말하려면, 이 글을 제안받았던 이야기로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제가 SEES 레터를 4층에서 읽을 때 무슨 말을 듣고 싶었는지 떠올려 보았거든요. SEES 선배님들께서 이룩하신 빛나는 성과들과 그 소회를 듣는 것도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보통 쉬는 시간에 읽던 글이라 그런지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꼭 대단한 성취가 없었더라도요. 그래서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의 모든 분들께 안부의 말씀과 더불어 오늘도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감히 전하렵니다. 조만간 그리운 25-1동에 돌아가 인사 전할 수 있을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부산대학교 학부생들과 학습프로그램차 호주 시드니 탐방 – 2025년 여름>

 

***** Profile *****

2009.03.-2013..02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이학사
2013.03.-2022.02.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이학석사
2022.03.-2022.08.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 박사후연구원
2022.09.-2023.08. 미국 뉴멕시코 광산 공과 대학 (NMT) 박사후연구원
2023.09.-2024.06. 서울대학교 지구심부-지표 상호작용 선도연구센터 박사후연구원
2024.07.-2025.02. 서울대학교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조교
2025.03.-현재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