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기회를 도약의 계기로

2021-03-31l 조회수 1928
저는 2018년 2월 박사학위 취득 후 작년 7월부터 독일 막스 플랑크 기상연구소 (Max-Planck Institut für Meteorologie)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중인 서재명이라고 합니다. 독일에 오기 전 2주 이상 외국에 나가본 경험도 없던 제가 낯선 비 영어권 국가에 거주한지 벌써 반년 이상이 지났다는 점이 새삼스럽습니다. 오늘 저는 동문칼럼의 지면을 빌려 학위 취득 후 독일에 오게 된 계기와 독일에서의 연구활동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대류·도시기상연구실에서 주로 산과 대류 구름이 만들어내는 흐름과 산악 지형에 내리는 강수 현상에 대해 이론적/수치적으로 연구를 해왔습니다. 대류·도시기상 중 대류에 해당하는 연구를 주로 해왔던 셈이죠. 하지만 연구실 특성상 도시에 해당하는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았습니다. 도시 내 건물 옥상과 인도 혹은 도로 사이, 도시와 도시 내 공원 사이의 기상/대기질 비교 연구나 관측 장비를 실은 차량을 이용한 도시 내 대기질 측정 연구에 참여하며 이론/수치 연구에 몰입하다보면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우리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라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마친 후 직장을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인내심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제 연구 주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수많은 연구소 및 대학에 직접 컨택메일을 보내보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제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다양한 구인공고에 지원을 해보았지만 졸업 후 1년간 단 한 곳에서도 긍정적인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3월 막스 플랑크 기상연구소에서 올라온 한 구인공고를 접하였는데, 연구 주제는 대류 구름에서 발생하는 콜드 풀에 대한 수치 모델링이었습니다. 저는 비영어권 국가에서의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미국/영국 이외의 국가에서의 구직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2020년 여름 수 많은 관측 장비를 이용해 실제로 대류 구름을 관측하는 캠페인에 관련된 프로젝트라는 점이 제 눈을 사로잡았고 이론-수치-관측 연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시점에 이미 접수 기한이 하루 지나있었지만 저는 무작정 현재 제 그룹리더에게 기한이 지난 것은 알고 있지만 정말 이 연구를 하고싶다는 요지의 장문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인터뷰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렇게 독일에서의 연구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의 첫 생활은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주제에 적응해 나가느라 연구소와 집에서만 주로 시간을 보냈고 연구소에서는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이죠. 초기에 필요한 비자문제, 거주자 등록 등의 행정 처리는 연구소의 직원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 연구소 외의 현지인들과 접할 일이 많아지고, 이사를 하며 인터넷 설치, 전기회사 가입, 거주지 갱신 등 모든 생활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다 보니 점차 외국인으로서의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대해 마지않던 실험 설계를 위한 관측 캠페인 관련 미팅에서도 공식 발표를 제외한 모든 대화가 독일어로 이루어져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었지요. 현재는 작년 9월부터 독일어 학원을 다니며 새로운 친구도 만들고 차차 적응해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과는 별개로 연구환경에는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박사후연구원 뿐만 아니라 박사과정중인 학생들도 하나의 독립된 과학자로 존중하며 동등하게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나 궁금한 점이 있거나 연구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면 언제든 어디서든 거리낌없이 말을 걸고 연구 교류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자연스래 형성되어있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저는 올 여름에 있을 관측 연구를 위해9가지 수치모형 결과를 이용해 독일 내 콜드 풀의 특성을 밝히고 이를 이용해 콜드 풀 특성을 분석할만한 이론적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를 진행중입니다.

독일에서 직업을 구하고 낯선 곳에서 생활하고 연구하는 경험을 통해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먼저 기회는 언제/어디에서나 찾아올 수 있으며 그 기회과 왔을 때 그것을 잡아낼 준비가 되어있어야한다는 점입니다. 이 연구소에서 올라온 구인공고를 보기 전 저는 1년간 구직 활동을 꾸준히 해왔기에 접수 기한이 지난 시점임에도 준비된 서류와 함께 빠르게 메일을 보낼 수 있었고 그것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음 직업을 찾을 때 현재 나의 연구주제와 얼마나 일치하는지도 중요하지만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연구인지도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제 경우는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로 실제 제 이전 연구 주제와는 조금은 동떨어져 있지만 이 연구를 위해 필요한 능력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어 무난히 연구에 적응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은 많다는 점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도 수많은 우수한 연구실적을 만들 듯 미국 유명 대학이나 연구소가 아니더라도 전 세계 수많은 곳에 좋은 연구를 하는 곳이 있다는 점을 최근 느끼고 있습니다. 시선을 넓혀 다양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 내 기준점과의 합의를 하는 것이 아닌 내 세계관을 확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여러분 에게도 의외의 기회를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요?

Profile
2005. 03. ~ 2009. 02.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대기과학전공 (이학사)
2009. 03 ~ 2018. 02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이학박사)
2018. 03 ~ 2018. 10 서울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 박사후연구원
2018. 11 ~ 2019. 06 서울대학교 BK21 플러스사업단 박사후연구원
2019. 07 ~ 현재 Max-Planck Institute for Meteorology 박사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