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환경과학부 후배님들께

2021-03-31l 조회수 1188
후배님들, 안녕하세요? 졸업생 서인아 입니다. 저는 2005년 지구환경과학부에 입학하여 2016년 2월에 이용일 교수님 연구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심해저광물자원연구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해저퇴적물의 성분을 이용해 과거 해양환경이나 기후를 복원하는 고해양학/고기후학이 주된 연구 주제입니다.

후배님들께 도움이 될 이야기를 궁리해 보았지만, 아직 제가 그 정도의 인생 경험과 글솜씨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학생 시절에 고민했던 문제와 그 과정에서 제 나름의 답을 찾으려 했던 방법들을 말씀 드리는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진로를 고민하는 이유는 결국 무엇을 해야 행복에 가까워질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뭘까에 대한 답을 알고 싶기 때문이겠죠.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원서를 쓸 때, 몇몇 친구들이 하나 둘씩 전문대학원이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대학원이냐 취업이냐를 결정해야 할 때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됩니다. 장기적으로 저에게는 연구자라는 직업이 가장 맞을 것이란 결론으로 대학원에 갔고 연구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대학원 진학 후에도 제 속에서는 이런저런 질문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던 것 같습니다. 목표지향적인 친구들은 이런 고민을 저보다 덜 했을 테지만, 저는 힘든 상황이 올 때마다 혼란스러워 했었죠.

특히 대학원생 시절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그런 성과들이 아주 가끔씩만 나온다는 점이 스트레스였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좇으면서 논문을 읽고, 주말에 집에서 쉬어도 불편한 마음이 들고, 아무리 실험을 꼼꼼하게 해도 결과가 예상했던 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죠. 소소한 삶의 즐거움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학교 식당 점심메뉴가 지겨울 때, 직장인 친구들처럼 휴가 내서 멀리 해외여행도 다녀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돈도 시간도 없을 때, 내가 정말 이래서 얻는 게 뭘까, 졸업하면 정말 이런 생활이 끝나긴 하는 걸까, 회의가 들 때도 많았습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제 선택에 대해 믿음을 갖는 게 필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 갈림길들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 왔고, 지금 힘든 부분들은 그 선택에 딸려 오는 부수적인 것들임을 아는 것이지요. 물론 그 중에는 당시 미처 몰랐던 부분들도 있고, 그때 알고 있던 나의 모습과 세상의 모습 모두 지금의 눈으로는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 때의 결정이 100% 옳지는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로 같은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내면의 목소리도 들어 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나 장래 전망 등 수많은 점들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는 없거든요.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계획대로 모든 것이 되지 않고, 생각했던 것과 내 인생이 다르게 흘러가는 일이 많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날 때, 과거의 내 결정이나 현재의 삶, 그리고 앞으로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회의를 느끼면서 고민하기보다는 빨리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가는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기분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무기력해지거나 더욱 상황을 나쁘게 받아들이게 되기도 하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외부적 상황 때문에 내 인생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인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처리하면서 일상에 매여 있다 보면 중요한 게 뭔지 잊어버릴 때가 종종 생깁니다. 특히 연구실 생활을 하다 보면 세상에 실험과 논문과 나, 세 가지만 남아 있는 것 같은 고립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고요. 그럴수록 여유를 갖고 건강관리에 힘쓰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했으면 합니다. 제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후배님들이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