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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비'와 '지속가능한 열정'
등록일 2020-04-09 조회수 100
저자 안진호 교수
첨부파일 [크기변환]안진호.PNG [125298 byte]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것이며, 우리들이 경험하는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이다.’

   

위대한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한 말인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복도 벽 액자에 쓰여져 있던 글이다. 나중에 아인슈타인의‘명언’집을 찾아보니, 그는 덧붙여‘신비는 모든 예술과 과학의 근원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덧 30년이 넘게 지났지만, 복도에서 보았던 이 글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여름밤의‘은하수’,‘ 별똥’,‘ 아름다운꽃’,‘ 높은산에 올라가서 보는 풍경’앞에서‘신비’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학부 기간 동안 주로 지질학과 화학을 공부했는데, 3학년 초까지도 전공에 대해서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전공과 관련되어‘신비’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가 암석을 얇게 잘라만든 박편을 편광현미경으로 보고서, 그 화려한 간섭색과 광물마다의 고유한 무늬에서‘신비’를 느끼고 전공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자연에서 보이는 대칭, 반복, 색깔의 조화, 다양함을 즐기며, 여기에 나의 열역학적인 지식과, 판구조론 이론을 더하여 ‘돌’을 알아간다는 것이 너무 흥미로왔다. 그래서, 석사과정에서 변성암을 연구하였는데, 주변에 있는 돌덩이 하나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엄청난 에너지와 다양한 화학반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돌덩이 각각이 나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면서 나에게 자신의 얘기를 들어보라고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름 암석학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연구는 항상 어려웠다. 어떻게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써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논문이라는 것이 뭔가 엄청난 발견을 해야만 쓸 수 있는 것이라 착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되어 있고, 과학자는 자연의 극히 일부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 결과를 논문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할 뿐인데 말이다.

    

‘신비’에대한나의끝없는욕망은자연의새로운측면에관심을갖게만들었다.‘ 지권과생물권 간의 상호작용’을 화학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라는 막연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러다가‘생지구화학적 순환’이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용어지만, ‘탄소순환’,‘ 질소순환’과 같은 것에 해당하며, 내가 이 용어를 처음 들어 본 것은 석사과정을 마치고 나서다. 마침 미국 스크립스해양연구소에서 박사과정 학생이 되어‘탄소순환’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에 내게 생소했던, 이산화탄소, 메탄, 산화이질소와 같은 온실기체에 관해서 알게 되었고, 해양물리학, 해양화학, 대기화학, 대기역학, 암석학 같은 수업을 골고루 듣게 되었다. 남극 빙하에 포집된 과거 공기를 분석하여 이산화탄소의 농도변화 조절기작을 연구하였는데, 내가 느낀 것은, 과학자들이 좀 알려고 하다가 모르는 것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1개는 알게 되지만, 모르는 것 10개를 더 추가하게 된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기 전에 염려가 되어, 심사위원교수님 중의 한 분께 질문을 해 보았다.‘ 박사학위를받으려면어떠한자격을갖추어야된다고생각하십니까?’라고여쭤보았고, 답변은‘우리가 뭘 모르고 있는 지를 명확히 안다면 박사가 될 자격이 있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 말씀을 깊이생각하고 있다. ‘신비’를 경험한다는 것은 더불어 ‘우리가모르고있다’ 라는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다 아는 것은‘신비’하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일반인과 다른 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과 그 무지를 극복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아인슈타인의 명언으로 돌아가서 보면, 과학자와 예술가는‘신비’를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신비’는‘호기심’으로 발전하고, 여기에‘열정’이 더해지고, 인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지식이 생산되는 것이다. 가끔은 우리의 자연관 또는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과학적 혁명이 일어나기도 한다. 과학은 그 과정에서 과학자에게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일부 결과는 우리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특별히, 우리 지구환경과학부의 연구결과는 ‘지진’, ‘화산’, ‘폭염’, ‘태풍’, ‘지구온난화’, ‘ 자원’, ‘ 오염’, ‘ 해수면상승’, ‘ 온실기체감시’, ‘ 수산자원’ 등과 같은 현안 문제와 관련이 깊다.

    

자연에서 보는 새로운‘신비’는 나에게 계속해서 자극을 주었다. 울릉도 돌자갈 해변, 순천만 갈대숲, 오레곤 해안가의 사구(sand dune), 시베리아 동토, 알라스카에서 바라본 얼어 있는 북극해, 남극에서 본 신기한 빙하... 이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1년 전에 남극에서 보았던 블루아이스를 꼽고 싶다(그림 참조). 남극은 그 자체가‘신비’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것은 블루아이스(blue ice)였다. 깊은 곳에서 딱딱한 얼음이 상승한 것인데, 햇빛을 받으면 푸르게 보인다. 나는 예전에 했던 것처럼, 또다시 비밀을 밝혀보고 싶었다. 언제, 어디서 형성되었으며, 과거의 환경/기후에 관한 어떠한 기록이 남아 있을지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탄소순환, 빙하거동, 해수면상승에 관한 과학적 난제에 대한 해답이 거기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더욱 흥분해 있다. 더욱 신나는 것은, 나의 이러한 호기심에 외국의 과학자들이 모두 함께 맞장구 쳐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과 나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무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있고, 호기심에 충만해 있으며, 알아 가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무엇을 모르는 지를 배울 수 있고,‘ 신비’를 즐기며, 비밀을 조금씩은 알아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부산물로 우리는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산다. 우리는 주변의 자연환경에 다가가서, 물어보아야 한다. ‘너는 누구이며, 왜 거기에 있고, 언제부터 있었고, 언제까지 있을 것이며, 지금 누구랑 어떻게 지내니?’라고. 어쩌면, 오염된 환경에 대해서 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며, 그 가운데서 우리는 무엇을 모르고 있으며, 무엇을 알 것 같은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다. 이렇게 알고 싶은 욕구가‘열정’으로 바뀌고, 결국 과학자는‘신비’에 열정을 더한다.

    

알고 싶은 욕구가 가장 강렬한 연령이 있을까? 자연의 신비를 경험하는 것은 나이와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과학자는 지속적으로 신비를 경험하고, 무지를 자각하며, 열정을 갖게 될 것이다. ‘지속가능한 열정’의 원천은‘자연의 신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