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BK21 PLUS

전체메뉴
 
HOME>학부정보실>SEES 뉴스레터>SEES Headlne

뉴스레터 | SEES People

제목, 등록일, 첨부파일, 내용을 포한한 공지사항 상세보기 입니다.
제목 Anxiety (불안감)
등록일 2019-09-30 조회수 164
저자 이상묵 교수
첨부파일 [크기변환]이상묵교수님.PNG [92264 byte]

인간은 유일하게 자기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아는 동물이고 그 사실을 생각하면 불안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는 죽음에 대한 부인(denial)으로 관철되었다고 한다(어니스트 베커- Ernest Becker). 사실 우리는 어떤 계기가 있기 전까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13년 전 2006년 7월 2일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내가 몰던 차가 전복되면서 척추에 큰 손상을 입고 목 아래로는 완전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다. 흔히 의식이 없어도 귀는 열려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의식은 없었지만 주변에서의 소리를 듣고 머릿속으로는 지금 처한 상황을 열심히 짐작했다. 응급구조요원들에 의해 헬리콥터에 실린 것도 기억난다. 단, 나는 San Diego 같이 큰 병원이 있는 도시로 이송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도착한 곳은 인근 Bakersfield라는 정말 사막 한가운데 아무것도 없는 작은 도시였다. 주변 의사들이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 당장은 살아있지만 너무나 형편없는 작은 병원에 와서 어쩔 수 없이 죽는구나 생각했다. 내가 원하던 원치 않던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다가오는 죽음을 강렬히 부인하며 머릿속에서 강렬히 저항을 했다. 그러나 그래봤자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냥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동안 살면서 아찔한 위기의 순간들이 있었고 그 때마다 잘 피해왔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냥 이렇게 가는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도중에 하차할거면 왜 이 길을 택했는가하며 바보스러운 자신을 원망했다.

   

흔히 의식(consciousness)의 기원을 학자들은 우리 인류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지구 초기에는 단순한 단세포생물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포 밖으로부터 여러 형태의 자극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천적같이 위험한 것일 수도 있었고 또 먹이같이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학자들은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세포 내에서 미리 자극의 종류를 예측해보는 기능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발전하여 오늘의 의식에 이른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 보면 나도 당시에는 외부의 소리와 자극에 대해 상황을 머릿속으로 꾸며보는 단세포 같았다고 볼 수 있다.

   
병원으로 이송된 지 3일 후 맥박과 혈압 같은 생명징후가 안정을 찾자 목을 다시 접합하는 수술을 했고 다행히 수술 직후 깨어났다. 의식이 없던 3일 동안 두 번 죽고 세 번 깨어나는 꿈을 꾸었다. 적당한 표현이 없어서 꿈이라고 하지만 사실 너무나도 생생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도 그 때했던 생각들을 잊은 적이 없다.

    
사고 직후 3일 동안의 임사 체험(near death experience)은 나를 아주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내가 이렇게 잘 받아들이고 일어설 줄 몰랐다. 사실 나조차도. 보통 병원을 바꾸면 모든 검사를 다시 한다. 거기에는 심리 상태를 평가하는 것도 있는데 나를 찾아온 정신과 의사들은 나와 몇 마디를 나누고 나면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심리 상담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나를 그토록 강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안감(anxiety)이 있는데 그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그 사실을 직면할 수 있었던 것이 나에겐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보통 나이 들고 임종에 가까워서 자기 삶을 돌아보고 평가하게 되는 데 나는 중년에 일찍 그런 기회를 한 번 더 가져 본 셈이다.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조차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죽음에 관한 논의와 생각이 각자의 삶을 더 의미 있고 풍요롭게 한다고도 한다.

   
사고 후 내가 연구하는 지구 물리 문제 이외에 더 근본적인 Big questions들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컴퓨터와 인터넷 덕분에 비록 내 스스로는 책장 한 장을 넘기지도 못하지만 수많은 책을 접했다. 그러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사라 베이크웰(Sarah Bakewell)이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Montaigne)에 관해 쓴 책에서 그가 나와 같은 임사 체험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몽테뉴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 유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기에는 활발한 활동을 하며 지역 정치가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한편 그는 죽음에 대한 의문을 평소에 가지고 있었다. 서른일곱 살 되던 해, 농장을 돌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곧바로 무의식 상태에 빠졌는데 그 때 본 세상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온했다. 깨어나서 주변 친구들과 하인들에게 자기가 본 죽음의 세상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자신이 피를 토하고 옷을 찢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정말 가관이었다는 것이다. 그 때 몽테뉴는 깨달았다고 한다. 죽음이 내적으로는 매우 평온한데 밖에서 볼 때는 그것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하다는 것이다. 몽테뉴는 그 이후 모든 관직에서 손을 놓고 자기의 일상생활을 적는 수필이라는 문학 장르를 만들어냈다. 예전에 글을 쓸 때는 무슨 목적이 있었는데 수필은 그냥 펜이 가는 대로 적는 것이다. 때로는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과 다르고 모순되기도 한다. 오늘날 Facebook이 일종의 수필이다. 신기한 사실은 몽테뉴는 이 글이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늘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은 몽테뉴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같이 느낀다는 점이다.

    

2015년 안식년을 맞아 프랑스 파리의 Institut de Physique du Globe de Paris에 초청받아 3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다. 그 기간 중 독일 브레멘에 가서 사람을 만나기로 했는데 철도 파업이 일어나 며칠간 앞으로도 뒤로도 못 가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 때 갑자기 몽테뉴의 생각이 났다. 그리고 독일 대신 방향을 바꿔서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로 갔다. 그 곳에 가도 휠체어 접근성이 좋지 않아 몽테뉴가 살았던 성이나 그의 행적을 답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곳에 가면 왠지 몽테뉴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모하게 보르도로 향했다.

   
역시 내가 휠체어로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시 파리로 돌아가려고 할 때 활동보조인 분 중한 분이 가까운 공원에 몽테뉴 동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책에는 그런 말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 찍어온 사진을 보자고 하자 아니 이것은 몽테뉴(Montaigne)가 아니고 삼권분립을 주장한 몽테스키외(Montesquieu)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옆에 또 다른 동상이 있다고 해서 사진을 보자고 했다. 그건 몽테뉴였다.

   
파리로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430년이라는 긴 시간적 공간을 뛰어넘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또 같은 이유에서 불안했던 사람을 만난 것이다. 서쪽에서 지는 석양을 보며 다시 몽테뉴의 책을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