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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학문과 인생의 "키워드", 그리고 교육과 연구 철학 "플리즈 유즈 미!"
등록일 2018-09-27 조회수 582
저자 김종성 교수
첨부파일 김종성2.PNG [106304 byte]

어떻게 잘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따뜻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하려는 우리 아이의 손을 살포시 따듯하게 잡아주어야 아이는 무서움을 떨치고 차차 걸음마를 떼고 걸을 수가 있습니다. 보채지 않고 기다려 주는 마음, 그런 따뜻한 기다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Time flies”, 바쁘고 힘든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다 문득 한참 후에 가끔 생각나는 말, 시간이 날아간다(fly)고 할 만큼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것이 시간(시절)일 것입니다. 바다(생태)공부를 제대로 한번 해보자 마음먹었던 때는 학부 3학년인 1996년으로 기억됩니다. 모교 은사님인 고철환 선생님의‘생물해양학’수업을 들으면서 바다를 처음으로‘놀이’의 대상이 아닌‘탐구’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이제는 제가 해마다 강의하고 있는 바로 그 과목입니다. 저는 과연 이 과목을 강의하면서 몇 명이나 저와 같은 생각을 갖게 했는지 반문해봅니다.
지금 2018년 8월, 저는 은사님이 계셨던 그 연구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1996년부터 박사학위를 마칠 때까지 관악에서 고철환 선생님과 함께 했던 약 10년, 2007년부터 세계적인 석학 Giesy 교수님(h-index=118)과 함께 지낸 캐나다 첫 직장 시절 2년, 2009년 고려대 부임 후 어설픈 초짜 교수로 어영부영 보내버린 짧지만 가슴 떨렸던 4년, 그리고 모교 강의실에 학생이 아닌 선생으로 다시 돌아온 지 어느덧 6년, 이렇게 강산이 2번도 넘게 변할 긴 시간이 어쩌다보니 電光石火(전광석화)처럼 지나갔네요.
오늘 오후‘한국환경공단’의 <자연 가까이 사람 가까이> 사보의 2018년 가을호에 실릴 [그린 JOB] 인터뷰를 하면서 20여년의 기억과 옛 추억의 조각들을 맞추면서 잠시지만 참 행복했습니다. 꽤 오랫동안“바다와 생태”라는 학문적 탐구대상을 눈과 손과 귀에서 놓아본 적이 없었고 짧지만 길었던 그 길에는 늘 은사님과 학생들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고마운 분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제 일과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지난 20여 년간 저의 학문과 인생을 지탱하고 키워왔던“키워드”로 이글을, 제마음을 우리 학생들에게 전해보려 합니다.‘ 따뜻함’,‘ 자유로움’,‘ 섬세함’,‘ 지독함’,‘ 치열함’,‘ 엔돌핀’그리고“우리것”으로말입니다.

   

‘따뜻함’

   
저는‘따뜻함’을 추구합니다. 은사님께 배웠습니다.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지도교수는 학생들에게는 마치‘아버지’와 같은 존재이기에 그 역할이 정말 중요하고 또 잘 해야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어떻게 잘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이‘따뜻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하려는 우리 아이의 손을 살포시 따듯하게 잡아주어야 아이는 무서움을 떨치고 차차 걸음마를 떼고 걸을 수가 있습니다. 보채지 않고 기다려 주는 마음, 그런 따뜻한 기다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공부하고 있는“생태학”도 따뜻한 기다림의 학문이란 생각도 듭니다. 자연과 생물의 교감, 그리고 소통의 진실을 알려면 보채지 않고 기다리면서 꼭꼭 숨겨진 비밀스러운 그 관계를 천천히 그리고 아주 차분하게 알아가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다림의 핵심적 요소를 저는‘따뜻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따뜻한 기다림이 소외나 무시로 오해될 때도 있어 마음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시간이 약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 이해하게 되고 그 관계가 보다 좋아지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까요. 오늘 옛 은사님의 그 따뜻했던 기다림과 보살핌의“아버지”와 같은 마음이 가슴을 저미며 다가오니 더욱 그립습니다.

   

‘자유로움’과‘섬세함’

    
우리는이두단어를들었을때상반되는(矛盾)되는느낌을받을수있습니다.‘ 자유로움’은‘섬세함’과는 달리 거칠거나 거칠 것이 없는 무심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자유로움은“삶과 사고의 체계”입니다. 저는 책을 읽기보다는 산과 들, 그리고 바다를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학부 성적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학부 때는 많은 시간을 주로 돌아다니는데 썼고, 그러다 보니 자연이 가깝게 느껴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졌고, 생태학에도 관심이 커졌던 것 같습니다. 또 평생 공부하는 직업을 아직까지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고 재미있게 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유로움’이 저에게 아주 값진 선물을 하나 주었습니다. 바로‘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질 수 있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근데 질문으로만 끝나면 곤란하겠지요? 그 자유로움이 섬세함으로 잘 포장되면,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해답”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순수한, 견고한, 절제된‘섬세함’이‘자유로움’에 답을 하게 됩니다. 이제 그 자유로움은 획일화되지 않고 세련된 솔루션을 가져다줍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그런 자유로움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자유로움을 섬세함으로 가득 메꿔 나가기를 응원합니다.‘ 섬세함’은“꼼꼼함”과는또다르다는것도말해주고싶습니다.

     

‘지독함’

    
‘지독함’의 사전적 의미는 다양할 터인데, 제가 말하고 싶은‘지독함’은“한계를 넘거나 극에 달하는 상태에 이름”혹은“의지나 마음이 매우 크고 강해짐”이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독스러우면 좋을까요? 다른 말로‘집중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 우물을 파다”라는 귀에 익은 우리 속담이 있지요.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 한마디로 끝장내다, 영어로는 그런 사람을 ‘finisher’라고 하지요. 제게도 늘 처음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던 기억도 납니다. 실수도, 실패도 많았고 그래서 더 지독하게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쩌면 진리일터인데 모든 것이 그렇듯 공부도, 논문도 한번 해(끝내)보면 두 번은 쉽고, 세 번은 보다 쉬워집니다. 첫 논문이 어렵고 두 번째 논문은 그래도 조금 쉬웠던 것을 여러분도 경험해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면 언젠가는 목표의 끝에 다다르게 되고, 다시 거기서 출발하면 또 다른 목표의 끝에 이르게 되겠지요. 여러분의 그 끝없는 길, 반복의 늪에 빠져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에 있어 작은 목표건 큰 목표건‘지독함’을 무기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5년, 10년 쯤 뒤에 여러분은 어디선가 누군가를 위해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을 쓰고 있을 거란 생각도 해 봅니다.

   

‘치열함’‘, 엔돌핀’, 그리고“우리것”

    
논문이 나오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할 것입니다. 앞선 몇 개의 키워드를 모두 갖추었다 하더라도 다른 외적 요인들이 또 많기에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하는 길은 여전히 험난할 것입니다. 새로운 논문은 또 다른 시련과 도전을 부추기겠지요. 특히, 생태학과 같은 순수기초과학분야는 아주 오랫동안의 끈질기고 집요한 세심한 관찰을 전제하기에 더욱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치열하게 하지 않으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집니다. 공부에 있어, 논문을 작성함에 있어 동기부여와 해결의지는 필수적 요소입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끈질기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반복하다보면 정답에 가까운“해답”에 근접할 겁니다.

그 치열함은 곧‘엔돌핀’이란 것을 우리 몸속에서 서서히 끌어낼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즐겁고 재미있게 공부하는 방법을 찾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과정이 그리고 또 그 결과가 바로“우리 것”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최초’라는 것에 두려움과 버거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최초’로 하는 것들이 사실 많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지금 작성하고 있는 그 논문도‘최초’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때론 작은 최초도 되겠고, 운이 좋으면 큰 최초도 될 수 있겠지요. 여러분이 하는 공부의 결과물인 모든 논문이 바로‘최초’이고, 또 그것들이 쌓여서‘우리 것’이 됨에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마치며,

    
지금쯤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책상 위에 산적한 읽을 논문들, 그림과 표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초조한 선배들, 실험 배우고자 눈 빠지게 기다리는 후배들, 초안 논문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지도교수까지, 주변의 모든 상황과 사람들이 여러분의 가슴을 움츠리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렇게 힘들때는 잠깐의 여유를 가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세요. 혼자 해결하려고 바동거리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학위를 마치고 들뜬 마음으로 캐나다 직장 일을 시작할 때 Giesy 교수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은 그 이후로 제 학문과 인생의 제1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종성, 플리즈 유즈 미 (please use me)”라고 했던 한 마디인데, 이것이 바로“함께 하는 것”이란 학문적 철학이 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많이 힘들고 지쳤을 때 해주셨던 그 따뜻한 한마디가 큰 힘이 되었고, 그 이후로 저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유즈”하게 되었지요. 좋은 의미의“유즈”인 건 아시겠죠? 요즘은 제 연구실 학생들에게 자주 해주는 말인데, 오늘은 여러분 모두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공부”라는 외롭고 험난한 길을 선택한 자랑스러운 후배이자 제자인 여러분에게 선배로서, 그리고 선생으로서 아낌없는 격려와큰사랑을 담아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 함께나아가자”.
밤늦게 연구실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새벽 3시가 가까워 졌네요. 아직 25-1동 몇 연구실에 불이 환하게 밝혀 있네요. 교수님 사무실인지 학생 연구실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러분의 옆에 아직 누군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서로 격려해주기를 바래요. 그리고 이렇게 한번 말해주세요.

   

“플리즈 유즈 미!”